본문 바로가기

관광지

월출야영장 월출야영장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152-2 연락처 : 061-432-5416 국보 10호인 무위사와 인접하여 국립공원 월출산 등산로와 경포대 맑은 계곡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므로 청소년 심신 수련의 장소로 적합하다. 속박시설 30인실 12개, 수용정원 250명(야영 250) 집회시설 강당, 회의실, 야외광장 체육시설 배구, 축구, 탁구, 체력단련장 기타시설 주차장(대형5, 소형 10대) 휴관일 공휴일 더보기
마량미항 마량미항 소재지 전남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987 관람시간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연락처 : 해양산림과 061-430-3265 마량항은 광주에서 강진을 지나 우리나라 서남부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완도 다도해 및 제주도를 연결하는 청정해역으로 돔, 농어, 우럭 등 바다낚시의 보고이다. 조선초기 태종조 1417년 마두진이 설치되어 만호절제도위가 관장하였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을 당시 거북선 1척이 상시 대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유서깊은 만호성터가 남아있고, 까막섬이 수묵화처럼 떠있으며, 고금도와 약산도가 든든하게 풍랑을 막아주는 마량포구는 1종 어항으로서 천혜의 미항으로 손꼽히고 있다. 낮보다 밤의 정취가 아름다운 이곳 마량미항에서는 매주 토요일 아름다운 항구와 관광객이 하나되는 흥겨운 음악회가 열.. 더보기
전라병영성 전라병영성 소재지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관람시간 09:00~18:00 (3월~10월) 09:00~17:00(11월 ~ 2월) 입장료 :무료 연락처 : 061-430-3180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이다. 그러나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었고, 이어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폐영되고 말았다. 병영성 성곽의 총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28.175평)인데, 현재 사적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병영성 내의 당시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고 없으나 성곽은 뚜렷이 남아 있어.. 더보기
하멜기념관 하멜기념관 소재지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관람시간 09:00~18:00 (3월~10월) 09:00~17:00(11월 ~ 2월) 입장료 무료 연락처 : 061 - 430 - 3318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하며, 오른쪽 각진 형태의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상징한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더보기
강진8경-강진만 강진8경-강진만 북쪽에 월출산, 남쪽에 구강포와 바다, 그 위에 떠 있는 섬들과 갯벌, 그리고 산과 하천, 평야를 골고루 갖춘 강진 땅은 언제 보아도 수려하다. 강진읍을 지나 고금도가 건너다보이는 마량까지 강진만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는 23번 국도와 서쪽의 백련사와 다산초당,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바다갈대들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다산초당 동암 바로 옆에 있는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구강포 앞 바다를 본 후 만덕산 허리춤을 가로지르는 산책길 같은 등산로를 따라가면 시야가 넓게 펼쳐지면 서구강포 너른 바다와 아랫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며 백련사에 닿는다. 이 곳 백련사는 해안가에 바짝 붙어 있는 절로 강화 정수사, 김제의 망해사처럼 바다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잔잔한 바닷물 너머로 건너편 도암.. 더보기
강진8경-금곡사 강진8경-금곡사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632∼647) 밀봉(密奉)이 창건하였다. 밀봉은 당시 밀종(密宗)의 큰스님으로 이 사찰을 창건하고 성문사(城門寺)라 했다고 전하나 당시는 삼국이 통일되기 전이므로 신라 승려가 백제 땅에 사찰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사찰 입구 양쪽에 깎아지른 석벽이 있어 사찰 이름을 성문사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곡사로 나오나 사찰 이름이 바뀐 연대는 알 수 없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으며, 1799년(종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듯하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창되었고.. 더보기
강진8경-백련사 강진8경-백련사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한다.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사찰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렀다. 하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불교를 숭상하였기에 원묘국사 요세(了世) 스님에 의해 사찰의 교세는 확장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은 천시되었고 백련사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남해안 일대는 고려청자와 곡창지대로 약탈을 목적으로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에 의해 점점 폐사될 지경으로 내몰렸고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1170년경 주지 원묘(圓妙)에 의해 중수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중수는 조선.. 더보기
강진8경-다산초당 강진8경-다산초당 정면 5칸, 측면 2칸.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이 해 사적 제107호(정다산유적 丁茶山遺蹟)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