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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 강재일사

유형문화재 / 강재일사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작천용정길 21-1

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 제206

지정일

19981013

시대

조선시대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강재(剛齋) 박기현은 본관이 밀양이며, 사문진사공파 삼(參)의 15대손으로 1864년 4월 22일 강진 옴천에서 출생하였다. 조부(祖父)는 천익(天益)이요, 부(父)는 재빈(彬)이다. 어린시절에 옴천에서 병영으로 이사하여 갑오년 동학농민군이 병영을 점령하기 전까지 주로 그곳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가학(家學)을 통해 문리(文理)를 얻었다고 한다.
그후에는 화순 능주의 일신(日新) 정의림(鄭義林), 문귀암(文龜庵), 강진의 오남(吾南) 김한섭 등에게 지도를 받으며 학문에 힘썼다고 전한다. 구례의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과도 의(義)로써 교유하여 편지를 주고 받기도 하였으며, 매천의 사후 『매천집』( 梅泉集)의 발간에 힘을 썼다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그는 사남(四男) 윤안옹(1909∼1993)의 증언에 의하면, 성리학 뿐만 아니라 상수학(象數學), 천문(天文) 등에 두루 통하였으며, 그중에도 특히 천문에 밝았다고 한다. 종손 병채씨 댁에 소장된 자료들속에 천문 관련 자료들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윤안옹의 증언은 사실로 짐작된다.
1893년경부터 장흥 강진 일대에까지 널리 퍼지고 있던 동학을 금하기 위한 조처로 김한섭, 김병휘(金炳輝)(1842∼1903)등과 함께 향약계(鄕約契)를 조직하였으며, 한편으로 갑오년 당시에 동학농민군들의 폐정개혁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유생들의 대응활동에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1891년부터 1903년까지 매일 기록한 일기를 통해 한말 장흥 강진 일대 향촌 사회의 동향을 소상하게 남겨 둠으로써 격동하는 당시의 역사적 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1894년 장흥 강진 동학농민군에 의해 그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병영이 초토화되고,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개혁에 나선 동학농민군에게 형 장현(章鉉)이 체포되어 수난을 당하였으며, 종형(從兄), 창현(前 都正)이 갑오 12월 10일 병영 수성에 참가하였다가 순절하는 등 시련을 겪게 되자 병영으로부터 용상리 구상마을로 이주한 이후 초연히 강학에만 몰두하였다고 한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자 그는 마침내 울화병을 얻어 1913년 6월 1일 50세를 일기로 타계하게 된다.
용상리 마을 입구에 그가 오래도록 강학에 힘쓰던 바로 그 자리에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는 사당 용전사(龍田祠)를 마련하고 배향하였다. 용전사 앞 비문은 나주·광주 동학농민군과 수성군 사이의 혈전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는 나주 유생 겸산 이병수(李炳壽)(1855∼1941)가 지었다.
그의 문집인 『강재유고』(剛齋遺稿)는 강진 향교의 전교를 지낸 바 있는 4남 윤안 등이 중심이 되어 1988년에 간행되었다.
박기현이 남긴 일기는 1891년 7월부터 1903년 4월에 이르기까지 장흥 강진 일대 향촌 사회의 동향과 함께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인근 유생들과의 교유관계, 특히 갑오년을 전후한 시기 장흥 강진 일대의 동학농민군측과 관군측의 동향 및 당시 전투 상황 등을 소상히 알려 주는 자료로서 이 지방의 동학농민사를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는 자료이다.
이 책은 상,하 2권 2책으로 된 필사본(筆寫本)이다.
상권에는 1891년부터 1896년까지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1897년부터 1903년가지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일사는 매일의 날씨를 시작으로 강재 자신의 하루하루의 주요한 일과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그와 교유하였던 장흥 강진 일대 유생들의 이름과 관련 지명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1894년 당시의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긴요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풍부하다. 더욱이 1893년부터의 내용에는 장흥과 강진 일대에서 점차 세력화되고 있던 동학(東學) 포교 상황이라든가 동학의 확산에 따른 유생들의 대응 활동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장흥 강진 동학농민군 등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갑오년에 해당되는 내용을 보면, 이른바 ,<전주화약(全州和約)> 이후 집강소(執綱所) 통치기의 장흥 강진 일대 농민군의 활동과 그에 따른 보수, 유생 및 수성군측의 대응활동을 날짜별로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강재일사』(剛齋日史)는 장흥 강진 지역 동학농민군들의 폐정 개혁활동과 집강소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헌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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