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문화원

민속자료 / 해남윤씨추원당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강정길 77

지정번호

민속자료 제29

지정일

19900224

시대

1649(인조27)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추원당은 해남윤씨 덕정동파의 직계 선조인 통찰공 윤사보와 병조참의 윤경을 향사하기 위해 1649년(인조 27) 고산윤선도 (1587~1671)가 주축이 되어 건립한 제각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로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지붕은 겹처마 팔각지붕이며, 지붕 네귀에는 활주를 세웠다. 기와는 막새기와를 사용한 한와이다. 1781년(정조 5) 벽체와 서까래 보수 및 번와가 있었고, 1936년에는 동편 추녀의 서까래 교체가 있으며, 최근인 1986년에 전면적인 번와가 있었는데 현재까지 그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아 건립 당시의 원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된 해남윤씨 족보목판 93매가 보관되어 있다.
행랑채는 추원당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건물로 추정되는데, 겹처마로 꾸며진 솟을 대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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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자료 / 강진효정재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계율길 31-7

지정번호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7

지정일

20121026

시대

조선시대(1899년 중건)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대구면 계율리 717번지에 있는 건물로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이 세웠다.
조몽린(曺夢鱗)은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그의 부친인 조일상(曺一相)이 서재동(西齋洞) 초당(草堂)에서 거처하고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기 위해 현 장소에 가정자(假亭子)를 지어 기거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효정(孝亭)’이라 하게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대계사(大鷄祠)의 강당(講堂)으로 쓰이고 있다.
그간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를 하였는데, 최근 1982년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ㄷ자형으로 정면 5칸에 양측면은 3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상태는 양호하며 최근에 써 붙인 표구된 현판에는 효정재「孝亭齊」라 하고 있다.
효정재는 창녕조씨 37세 조몽린(曺夢鱗)이 1750년경에 부친 조일상(曺一相)께 저녁이면 자리를 깔아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올리면서 학업(學業)을 연마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했다.
1850년 1월 대계사(大鷄祠)를 창설하여 수운 조정통(水雲 曺精通)과 그의 아들 봉강 조응룡(鳳岡 曺應龍), 청간 조한룡(淸簡 曺漢龍)을 모시다가 1860년에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을 추배하고 동쪽방은 강당(講堂)으로, 서쪽방은 서당(書堂)으로 1960년대까지 사용했다.
1899년 청명절(4.5)에 기우만(琦宇萬 1838-1916)이 효정기(孝亭記)를 짓고 1982년 8월에 기와를 바꾸어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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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여택정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수동리 499-1

규모

1(정면 3, 2,427)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69

지정일

2008.09.19

시대

조선시대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강진 여택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평면과 구조는 이 지역의 정자와 다른 독특한 모습으로 되어있다. 중앙 2칸은 모두가 수납공간(광)으로 꾸며져 있고 양측은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누마루 3면은 모두 벽체 구성없이 열려있다.
양측 2개의 누마루에서는 규모나 부재사용면에서 다르게 구성된 특징이 있으며, 여택정은 강회정과 함께 향촌공동체의 중심공간으로서 조선후기 공동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자료들이 전해져 향토사나 건축사적으로 연구가치가 충분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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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선장리창년조씨고문서일괄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규모

127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68

지정일

2008.08.05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강진 선장리 창령조씨 문서는 주로 조명조(曺命肇, 1705∼1776)의 행적과 관련된 자료로서 연결된 문서를 중심으로 127건이다.
(문집필사본 9책, 교지 2매, 시권 1매, 방목 1권, 호적문서 12매, 입안 1매, 간찰 82매, 향약문서 1권, 기행문 4건, 시문(시축) 20건, 서관일기 1책, 그림 3점) 이 문서는 원래 영암에 연고를 두고 강진에 입향한 성관의 내력을 알 수 있고 시문과 문집, 기행문, 서간문을 통하여 당시의 향촌 사회 동향과 문인 교류관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설향약이정풍속(設鄕約以整風俗)>은 18세기 중엽 이후의 역사상을 담고 있는 향약 자료이며 호남책 등의 자료는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그리고 조명조가 책방을 수행하며 남긴 <서관일기>는 조선 후기 책방 연구에 도움이 될 귀한 자료로서 조선 후기의 수령권과 지방통치 방식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 문서는 보존도 잘 되어 있고, 학술조사를 실시(국사편찬위원회, 목포대학교박물관)한 바 도 있어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서간문이나 시문류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고 다른 곳에도 다수가 소장되어 있는 사례가 있음으로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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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덕호사소장고문서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덕천리 산111-4 덕호사

규모

고문서 61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64

지정일

2008.04.11

시대

조선시대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덕호사 소장 고문서는 덕호사에 배향된 오신남의 교지 21매를 비롯하여 오미수(吳眉壽)·오팔원(吳八元)·오상지(吳尙志)·오회영(吳會英)·오도삼(吳道三)·오대항(吳大恒), 그리고 유인윤씨(孺人尹氏)·유인백씨(孺人白氏)·유인선씨(孺人宣氏)·유인위씨(孺人魏氏) 등 평해오씨문중 후손들의 교지 13건, 호구단자 11건, 등장 5건, 그리고 문중의 문중답과 송계안, 벽송사(碧松祠) 관련 양안(量案) 관련 자료가 현전한다. 그리고 1618년 오신남에게 안흥량의 도적소탕의 공을 기려 내린 교서가 있다.
이 고문서는 현재 덕호사라는 향사우에 소장되어 있지만, 현전하는 문건은 대부분 전라도 강진에 입향하여 정착한 평해오씨문중의 제반사를 검토하기에 적합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교지와 교서, 호적문서를 통하여 당시의 제도사를 알 수 있다. 교지는 오신남의 관직에 따라 법전에 의거하여 1629년에 내린 추증 교지로 증조부(오미수)와 조부(오팔원)의 교지, 그리고 오신남의 5대손인 오대항(吳大恒)의 관직에 따라 오대항의 부, 조, 증조에게 1769년에 내린 추증교지가 남아 있다.
특히 덕호사에 배향된 오신남(1575-1632)의 경우, 충절인물로 평가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평해오씨문중의 전라도 강진 정착, 이후 지역 내 문중의 위상변화를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오신남의 후손들에 관한 자료는 18-19세기 평해오씨문중의 인적·경제적 기반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덕호사의 배향인물인 오신남에 대한 개인연구와 평해오씨문중의 강진지역 입향, 정착, 성장 등을 추적하는 중심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16세기 충절인물이자, 문중의 구성원, 그가 배향된 향사우(鄕祠宇) 등을 상호 연계하여 지역사 사례연구를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자료이다. 그리고 교지, 교서 등을 통하여 제도사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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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월남마애여래불두상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산 116-2

규모

총고355cm, 안고240cm, 안폭230cm

지정번호

지방문화재자료 제207

지정일

19991120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마애불은 월출산 남쪽 월남사지 3층석탑(보물 제298호)에서 약 2.5㎞ 떨어진 `칡덕골`에 있고 바위 전체높이 약 4m, 가로의 최대 폭 약 6m되는 큰 암벽에 동쪽을 향해 불상의 머리 부분만을 크게 부각시킨 음각마애불이다.
얼굴에 나타난 양식에 의하여 긴 눈꼬리의 치켜뜬 모습, 길게 내려 뻗은 코와 약간 사실적으로 표현된 입모습 등에서 이 마애불의 기법상의 수준을 다소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월남사와 현존하는 무위사, 그리고 바로 고개 너머 구정봉 아래에 있는 용암사지(龍岩寺址)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등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당시의 불상조각을 연구하는 하나의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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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사문안석조상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갈동리 1171

규모

높이122cm, 55cm, 두께28cm, 대좌직경155cm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187

지정일

19771122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석상은 하단이 좁고 상단이 넓은 상후하박형이다.
자연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앞면과 좌우면이 약간 다듬어졌을 뿐 후면은 자연석 그대로다. 대좌는 원형 판석으로 가운데가 사각으로 파여 있고 그 파인 부분에 석상이 세워져 고정 되어 있다. 윗면에는 8판의 연화문이 음각되어 있다.
한편 석상에는 앞면과 좌우면에 13개의 상들이 음각되어 있다. 문화 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 민간신앙적인 요소들과 불교적 요소들이 복합된 유형물이다.
이 석상은 본래 사문안이라고 불리어 온 지역인 마을 앞에 있는 야산 기슭 끝부분 길가에 있었는데 1943년경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용어를 볼 때 사문안은 사찰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석상이 있었던 부근이 사찰로 들어 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지점임을 알 수 있는데 확증을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폐찰되고 터만 남아 있는 월남사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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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무위사 삼층석탑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규모

높이 396cm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76

지정일

19771122

시대

고려시대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무위사 3층석탑은 전형적인 2층기단의 3층석탑으로 각 부재가 잘 조화 된 석탑이다.
지대석은 수매의 장대석으로 결구하고 그 위에 각형 2단의 괴임대와 하층기단 중식이 연결되고 있으며 각 면에는 면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조식이 정교하여 세련되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 1석씩으로 탑신에는 양면에 우주가 모각되고 2.3층에서는 그 높이를 줄여 체감을 보였다. 옥개석은 상면의 낙수면이 평박하고 처마의 곡선도 중앙에서 직선을 이루다가 우동의 합각에 이르러서는 가벼운 반전을 보였다.
이 탑은 3층 옥개석과 1층 옥개석 일부에서 약간의 훼손을 입었으나 그외의 부재에서는 완전한 상태로서 비교적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 탑의 조성 연대는 선각대사 편광탑비의 조성 연대(946년)와 동시대이거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은 고려초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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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 강진읍성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산 1-1717필지 강진읍 남성리 산 1-1717필지

규모

8,670

지정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233

지정일

20050713

시대

삼국시대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2005년 7월 1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233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시대 때 동음현()의 치소()로 처음 축조되었고,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탐진현의 치소(: 감영 등 관청의 소재지)로 사용되었다. 이후 조선 세종 때 치소가 잠시 도강현 송계리로 옮겼다가 다시 현재의 자리로 돌아온 이후 1478년(조선 성종 9)에 성곽을 다시 쌓아 강진현 읍성의 방비를 튼튼히하였다.
당시의 성은 총둘레 3,400m, 너비 2.5m, 높이 3∼4m였다. 성에는 1,332개의 성가퀴[]가 있었고 사방에 성문을 갖추었다. 그중 정문격인 남문은 중층 누각 건물이고 동문·서문·북문은 단층문이었다.
1531년(중종 25)에 수리하였고, 동학혁명 때 불에 타버린 이후 폐성이 되어 현재 서문 부근에 700m 정도만 남아 있다.
강진읍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지역사 및 성곽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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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 칠량 송정리 지석묘군

 

기본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송정리 696

규모

25

지정번호

지방기념물 제66

지정일

19850225

시대

청동기시대

관람시간

연중 09: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주차시설

무료

 

상세정보

전남의 서남단에 위치하는 강진은 탐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석묘 들이 분포되어 있다. 칠량면에는 13개군 152기의 지석묘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남방식과 개석식 지석묘가 대종을 이룬다.
칠량면에서는 영복리와 송정리가 지석묘의 중심분포권이며 또 서로 인접하고 있어 그 내용이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개석이 거대한 것은 대부분 남방식 지석묘들로 이를 중심에 두고 규모가 비교적 작은 지석묘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개석의 두께가 두꺼운 것은 개석식이 대부분을 점하는 반면 개석이 얇은 것은 남방식으로 축조된 것이 특징이다.
전남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는 무려 1만 여개로 추계되고 있는 가운데 영산강 유역과 탐진강 유역이 그 중심권에 속하며, 송정리 지석묘군이 탐진강 유역의 지석묘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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