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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지명

강진

강진

 

강진이란 지명은 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이라는 두 고을이 하나로 합해진데서 유래한다.

도강은 지금의 병영면, 작천면, 성전면, 옴천면 일대로서 백제시대에는 도무군(道武郡), 통일신라 시대에는 양무군(陽武郡), 고려시대에는 도강현(道康縣)으로 고쳐부르다가, 조선시대 태종17년(1417) 광산 현(현 광주 광역시 광산구 영동리)에 있던 兵馬都節制使營)을 왜구 침입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도강 현(현 병영면 성동리)으로 옮긴 후 탐진 현과 합하여 강진 현이 되었다.

그리고 탐진은 직금의 강진읍을 비롯 군동면, 도암면, 신전면, 칠량면, 대구면, 마량면, 일대로서 백제시대에는 동음 현이었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탐진 현(耽津縣)으로 고친 뒤 계속 같은 이름으로 부르다가 조선시대 태종 17년에 이르러 도강현과 합하여 강진 현이 되었다.

강진현의 한말인 1895년 전국이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나주부(羅州府)관할 강진군이 된 뒤 오늘에 이르렀으며 1읍 10개면으로 2005년말 현재 인구는 43,000여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진군 지역의 뫼발은 호남 정맥이 서편으로 향하는 궁성산, 월출산줄기와 연결되어 있다. 월출의 맥은 서기산, 석문산, 덕룡산, 주작산으로 우백호 노릇을 하고, 수인산, 화방산, 부용산, 천태산은 좌청룡이 되어 동편을 가리다.
강진읍내의 주산 역할을 하고 있는 우두봉과 보은산은 성전과 강진읍의 경계지점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어온 능선에 있다. 풍수형국으로 살펴보면 여음의 형태로 풀이된다.
읍내의 경우 황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국으로 해석한다. 보은산일대를 중심으로 우두봉은 소머리, 강진읍 성터는 얼굴, 군청 앞 쌍샘은 콧구멍, 군 청사는 콧등, 동성리 공동우물은 오른쪽 눈, 서성리 샘은 왼쪽 눈, 우이봉 고성사 일대는 귀, 다산동상 부근은 혀끝 강진농고 터는 젖에 해당된다고 전하고 있으며 목리와 초동은 소가 뜯어 먹을 풀밭이라는 설과 함께 영포(백금포)는 소똥이 떨어지는 자리라는 얘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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