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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응 정(1527~1630)
출생지 / (내용참조)
병영삼인리에서 도강 김씨 한걸과 해남 윤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남 본관 = 도강(道康) 자 = 사화(士和) 호 = 해암(懈菴) 관찰사 감(鑑)의 5대손
관찰사 최환과 정철이 경릉참봉에 첨거 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음. (해암가 : 삼동(三冬)에 뵈옷 닙고 암혈(巖穴)에 눈비 마자 굴음 센 벗 뉘랄 쬔 ?은 업건 마난 서산(西山)에 해 지다 하니 그를 슬허 하나이다.)
○ 학문과 예술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고, 충성과 효도가 모두 잘 되어 사람들 이 받들고 우러르다. ○ 명종(1545~1567)과 선조(1567~1608)가 세상을 떠나자 상복을 3년간 입었 고 “서산일락(西山日落)”의 슬픈 곡조의 음악을 짓다. ○ 또 가곡을 잘 지어 그 글이나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이 매우 처량 하므로 가곡집이 당시에 널리 퍼졌다. ○ 소강 정철(1536~1593)이 조정에 추천하여 경릉참봉(소혜왕후)에 제수 하였 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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