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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38호 ▶ 강진신전들노래 소 재 지 : 전남 강진군 신전면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38호 지 정 일 : 2005년12월 27일 신전 들노래가 남해안 지역 농경문화와의 연계성이 높고 들노래 본연의 신명과 예술 세계를 잘 담고 있어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신전 들노래는 논물대는 시기에 부르는 보메기 소리, 못자리 만들 때 부르는 못자리소리, 모를 심으며 부르는 모심기소리, 논에 자라난 잡초를 뽑을 때 부르는 초불메기소리와 중불메기소리, 만물메기 소리 등 모두 6가지로 나뉘며, 농악대처럼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북과 꽹과리만으로 음악을 맞추는 특징이 있다고한다. 더보기
천연기념물 151호 천연기념물 151호 백련사 동백숲, 마도진 마도성지 소 재 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산 55 지 정 번 호 : 천연기념물 제151호 지 정 일 : 1962년 12월 3일 백련사 앞에 동백나무 숲이 군데 군데 자생하고 있으며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가 곁들여져 자라고 있고,3ha면적에는 7,000여 그루의 동백 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3월말경에 동백꽃이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강진읍에서 4km 떨어진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는, 고려시대 원묘국사가 백련결사를 일으켰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는데, 이 길은 옛날 다산 선생이 백련사를 왕래 할때 이용하던 길이라고 알려져 있다고한다. 더보기
강진읍 강진읍 강진읍은 군(郡)의 중앙에 위치한다. 동(東)은 군동면의 평야, 남(南)은 강진만, 서(西)는 서기산, 신학산, 만덕산, 북(北)은 보은산이 감싸고 있다. 백제 · 신라 · 고려시대 백제 때 동음현, 신라(서기 757년)및 고려(서기 877~1394년) 때 양무군 탐진현(耽津縣)이며 조선시대 태종 17년(1417) 도강현(道康縣)과 탐진현을 합해 강진현(康津縣)이라 하고 치소는 탐진현 옛터에 두었다. 그 뒤로 송계(松溪 1429~1474)로 옮겼다가 1475년에 다시 옛터로 옮겨 왔다. 조선후기(1759년) 강진현이 분리되어 현내면(縣內面)은 교촌, 동문, 고내, 연지변, 탑동, 서문, 초지, 역리, 남당, 서리, 도계, 도원, 신기, 신조천, 송정, 부소문, 신천, 두동, 부학, 중이본, 송현,.. 더보기
강진 강진 강진이란 지명은 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이라는 두 고을이 하나로 합해진데서 유래한다. 도강은 지금의 병영면, 작천면, 성전면, 옴천면 일대로서 백제시대에는 도무군(道武郡), 통일신라 시대에는 양무군(陽武郡), 고려시대에는 도강현(道康縣)으로 고쳐부르다가, 조선시대 태종17년(1417) 광산 현(현 광주 광역시 광산구 영동리)에 있던 兵馬都節制使營)을 왜구 침입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도강 현(현 병영면 성동리)으로 옮긴 후 탐진 현과 합하여 강진 현이 되었다. 그리고 탐진은 직금의 강진읍을 비롯 군동면, 도암면, 신전면, 칠량면, 대구면, 마량면, 일대로서 백제시대에는 동음 현이었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탐진 현(耽津縣)으로 고친 뒤 계속 같은 이름으로 부르다가 조선시대 태종 17년에 이르.. 더보기
줄다리기(강진읍 줄다리기) 줄다리기(강진읍 줄다리기) -두패로 나누어 굵은 줄을 서로 당겨 자기 편으로 끌어온 쪽이 이기는 경기 또는 놀이- 강진읍 줄다리기 유래는 “환도군 고금도관왕묘에 춘추로제향이 있는데 그 제향에 병영, 병마도절제사가 제관으로 가게된다. 그 가는 길이 작천을 지나 마량에 이르고 있어서 그 행로를 강진 현감이 책임지고 治道를 해야 되는데 강진읍 목리에 이르면 탐진가어을 건너게 된다. 이때 배로써 다리를 만들고 길을 다듬는 부역을 봄에 줄다리기를 하여 진편이 담다아하게 되는 데서 유래를 두고 있다고한다. 더보기
땅뺏기 놀이 군동면화산리 땅뺏기 놀이 군동면 화산리 는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일대에 전승되던 두레굿의 이다. 는 일종의 으로 김매기를 끝낸 농군들이 피로를 달래고 화합을 다짐하는 놀이이다. 한 해의 마지막 김매기인 만두레가 끝난 뒤 마을에서 가장 풍작이 예상되는 집의 상머슴을 그 해의 농장원으로 뽑는다. 농민들은 그에게 어사화로 곱게 꾸민 패랭이를 쓰게 하고 소 위에 태워 풍물장단에 맞추어 “남문전 달 밝은 밤 수 임금은 놀음이요”하는 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돌아온다. 맨 앞에는 영기와 쌍용을 그려 넣은 덕석기(가로 340㎝, 세로 290㎝)를 들고 행진한다. 이 행렬이 이웃마을로 가는 길과 교차하는 삼거리라든가, 이웃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 마을의 두레꾼 행렬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양쪽 마을 두레꾼들은 .. 더보기
횃불싸움 횃불싸움 -농촌에서 음력 정월 도브름날 저녁에 하는 점술적인 민속놀이 준비된 햇불을 이용하여 직접 겨루는 형태(쥐불놓기, 달집태우기)- 이날 마을의 청년들은 식구 수대로 싸리 또는 짚으로 홰를 만든다. 저녁이 되면 각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악을 울리며 떼를 지어 동산 위로 올라가 대진을 한다. 달이 떠오를 때를 기다려 어느 한편이 먼저 상대편에게 “술렁수” 하면 상대편에서도 “꼴래꼴래” 하고 갖은 욕설로 응수하다가 풍악이 울리면 젊은이들이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가 서로 싸운다. 항복하는 자가 많은 편이 지며, 진 편은 그해에 흉년이 들고 이기는 편은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고한다. 더보기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라도 지방에 전하는 민속놀이- 지정번호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지정연도 1966년 2월15일 1966년 2월 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先唱]를 부르면, 놀이를 하는 일동은 뒷소리[合唱]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인 이순신(李舜臣)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 더보기